포비아극복수기
박 O O
04-07-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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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5기 참여자이셨던 박 OO 님이 최근 보내신 메일의 내용입니다. 글의 중간 중간에 나오는 점수는 최대불안을 10점으로 했을 때의 점수로 대부분의 환우분들은 프로그램 참가전 비행불안을 8점-10점으로 평가하십니다.]
저는 지금 파리에서 서울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몇 시간 전 비행기는 샬 드골 공항을 출발하여 지금 고도 35000 피트 상공을 비행 중에 있습니다. 기류변화가 예상되는 곳이 있다는 기장의 멘트도 있었고, 자주 기체가 흔들리는 것을 느껴 약간 긴장되기도 하지만 호흡법으로 곧 편안해집니다. 비행기는 안전하다는 것과 기체 흔들림에 불안 할 수 있지만 어떻게 대처하는 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저는 평소 비행기 여행을 잘 해왔습니다. 국제선 경험도 많고요. 그런데 2-3년 전부터 비행불안이 생긴 것 같습니다. 기억으로는 3 년전 비가 많이 오는 어느 여름 날에 매우 작은 기종의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서 서울로 오는 도중에 기체가 심하게 흔들리는 것 (원인 제공) 때문에 매우 긴장하면서 비행을 했던 것 같습니다. 이후로는 비행기를 탈 때도 작은 기종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고, 비행기를 탄 후 기체가 경미하게 흔들려도 쉽게 불안 해 졌습니다. 이러한 증상으로 12시간 이상 소요되는 국제선 장거리 비행 대신에 1-2 시간의 일본 여행을 선택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일본 여행에서도 비행 도중에 경미한 흔들림에도 매우 긴장하게 되었고, 심지어 기내 식사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작년에는 해외 출장의 기회가 있었는데도 의도적으로 회피하게 되었고, 심지어 비행기 타는 것에 대한 예기불안으로 전이 발전되었습니다.
이런 저의 비행불안으로 고민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국내에 비행공포증 연구소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치료를 받기로 결심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치료라는 표현 보다는 교육이라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습니다). 이상민 선생님이 소장으로 비행공포증연구소에 5기생으로 입교하여 그룹 교육을 받았습니다. 이틀간의 교육 중, 첫째 날 교육에서, 과연 비행불안이 완전히 극복 (또는 치료)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많았습니다. 교육 중에도 어떤 특별한 치료 (예를 들면 주사를 놓아 준다든지 하는 것)는 없고 비행기의 안전과 통계자료 그리고 불안의 종류와 신체증상 등 계속되는 설명만 하였습니다. 첫째 날의 교육을 마치면서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다음날 비행기를 탈 수 있는 정도를 물었을 때, 저는 50% 정도라는 부정적인 대답을 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교육을 집중적으로 그리고 긍정적인 자세로 임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첫째 날 교육 내용을 돼 새겨 보았습니다. 비행기가 흔들거리면 추락할 것 같다는 막연한 부정적 사고에서 비행기의 안정성과 고도에서 더욱 안전하다는 중간적 생각으로 바꾸는 순간 저는 마음이 매우 편해지면서 다음날 비행기를 100% 탈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둘째 날 프로그램은 실전 위주의 교육이었으며, 비행기의 외부와 내부를 자세히 살펴보는 교육과 어떻게 유지 보수되는지에 대하여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서울에서 제주로 가는 비행기를 탑승할 시간이 가까워왔지만 이전에 느끼던 예기불안이 많이 사라지고 다소 긴장되기도 하였지만 근이완법과 호흡법으로 불안이 많이 해소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전혀 불안하지 않는 상태를 0, 매우 불안한 상태를 10으로 보았을 떄, 탑승 직전의 상태는 1-2점 정도였으며, 탑승 후 이륙시에도 1-2점 정도로 안정된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고도에서 비행 중 기류 변화로 기체가 흔들렸을 떄 불안이 왔으며, 신체증상으로는 안면 근육이 긴장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다소 놀랐지만 안면 근육 이완을 한 후 불안이 많이 진정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기체 흔들림 (터뷸런스) 에서 저는 불안도를 4-5점으로 평가 하였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불안을 느낀 후 근이완법으로 불안이 많이 감소된 것에 대한 평가는 과소 평가한 것 같습니다). 비행기 착륙시의 불안도는 1-2점 정도였습니다. 제주공항에 도착 한 후 전체비행에 대한 불안도는 평균적으로 2-3점 정도로 평가하였습니다. 제주에서 서울로 돌아올 때는 비가 많이 내리고 기상상태가 좋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 나쁜 기상상태가 저의 비행불안을 극복하는데 매우 좋은 설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서울에서 제주로 비행은 전반 적으로 양호하였으며 비행불안도 많이 감소 하였는데도 불구하고, 돌아오는 비행은 갈 때 보다 더 불안한 5-6 점으로 평가하였습니다. 이러한 평가를 내리게 된 이유는 돌아올 때 더 심한 터뷸런스를 경험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제주행 비행을 시작하기 전, 저의 중간적 생각은 “비행기는 안전하다” 라는 한가지였습니다. 그리고 비행기가 흔들리면 자동차를 타고 갈 때 흔들려도 불안하지 않는 것처럼 불안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처음 터뷸런스를 만났을 불안해진 것에 대하여 무엇인가 잘못된 것 (실패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지금 와서 생각하면 부정적인 생각)을 하였기 때문에 돌아올 때는 비행불안이 아닌 실패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에 대한 불안이었던 것 같습니다.
5기 교육을 마친 후 1-2주는 실패 (지금 와서 생각하면 실패가 아님) 한 것 같은 생각 때문에 좀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1-2주를 보내고, 남은 2주 뒤에 있을 파리 행 비행기를 타야 할 생각을 하니 점점 긴장되기 시작했습니다. 비행기가 안전하다는 생각은 항상 머리 속에 있었기 때문에 상상 비행을 생각하면 그리 불안하지 않았지만, 뭔지 모르게 긴장되는 느낌이 자주 왔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 인터넷에서 미국의 어느 민항기 기장이 만든 비행공포증 극복을 위한 자료를 올려놓은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처음에는 건성으로 읽다가, 한글로 번역하여 쓰면서 자세히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상민 선생님과 안영태 교관님으로부터 받은 교육 내용과 매우 유사하였기 때문에 반복의 효과와 심화학습의 효과가 있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저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행기가 흔들리면 불안해 질 수 있다”, “비행공포 극복 과정은 불안을 없애기 위한 것이 아니고 과도한 불안을 대처하여 불안을 감소시키는 것이다”. “용기란 불안에 맞서 불안을 약화시키는 것이지, 불안을 없에는 것이 아니다”. “좋은 불안은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어야 한다.” 등등. 이러한 사실을 깨닫는 순간 제주-서울간 비행에서 “불안해서는 안되는데…”라는 잘못된 생각이 결국 저를 불안하게 한 요인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비행공포증 연구소에서 교육받은 자료를 다시 살펴보았습니다. 이상님 선생님이 나누어준 자료에도 같은 내용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프로그램 참여 당시 교육에 집중했어야 하는데 이런 중요한 부분을 간과하여 지나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의 비행불안이 생긴 원인이 단순히 터뷸런스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비행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적게 느껴졌습니다. 터뷸런스가 있으면 불안할 수 있으며, 가슴이 두근거리면 호흡법으로, 근육이 긴장되면 근이완법으로 곧 편안해 질수 있다고 생각하니, 불안이 많이 감소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비행 전날에는 “편안한 비행을 돕는 생각과 행동”의 지침대로 하였으며, 장거리 비행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였습니다. 파리행 비행 전날의 불안도는 1-2점이었습니다.
파리행 비행기는 오후 1시30분 인천공항을 출발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비행 당일의 기후는 태풍 민들레가 제주도 근방까지 육상 하는 중 이었습니다. 저는 지방에서 인천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3시간 가량 달렸습니다. 빗줄기는 거세어지고 하늘은 온통 짙은 먹구름으로 뒤 덥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편안한 마음으로 버스 안에서 음악을 들으면서 갈 수 있었습니다. 한달 전의 제주에서 서울로 오는 비행기가 비가 오는 날씨에 이륙한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비행기의 안전과 비행기 조종사와 승무원을 믿습니다. 지상에서 아무리 나쁜 날씨라도 비행기가 이륙할 수 있는 것은 안전이 확보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날씨가 이런데 비행기가 떠도 괜찮은지? 하는 걱정은 우리가 할 필요 없습니다. 우리보다 전문적이고 매우 숙련된 항공관련 종사자들이 편안하고 안전한 비행을 항상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태풍의 영향인지 심하게 흔들리는 것을 느끼지만, 호흡법으로 잘 대처하고 있는 저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파리까지 가는 도중에 터뷸런스를 잘 일으키는 적운층을 지나가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걱정되지 않습니다. 기장과 관제소는 각종 첨단 레이다를 이용하여 터뷸런스를 피해가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들이 승객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비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입니다. 저는 기내식을 두 끼 모두 먹고, 맥주도 마셨습니다. 기상 상태가 좋지 않아 비행시간은 예정보다 더 걸려 12시간 뒤에 파리에 도착하였습니다. 비행공포증이 없는 사람들도 이번 비행기가 좀 흔들렸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전체 비행에서 불안도는 1-2 점 정도로 아주 양호한 상태였습니다.
파리에서 일주일 간의 일정을 마치고 샬 드골 공항에서 오후 9시50분에 출발하는 서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이륙 후 기체가 다소 흔들리는 것을 느낍니다. 약간 불안 한 것 같습니다. 불안도는 2-3점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괜찮습니다. 불안할 수 있습니다. 때론 이전 보다 더 불안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어떻게 대처 할지를 압니다. 비행기는 두꺼운 공기 층을 파도 타 듯 잘 갑니다. 호흡법으로 곧 편안해 지는 것을 느낍니다. 인천공항에 곧 도착한다는 기장의 멘트가 나오고, 비행을 잘 마쳤습니다. 불안도는 1점으로 평가합니다. 다음 비행에서 불안도가 2점이나 3점으로 될 수 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입니다. 저는 계속해서 노력할 것이며, 더 많은 터뷸런스를 경험하여 불안을 감소시킬 것입니다.
저의 비행불안을 극복하는데 도와주신 이상민 선생님, 안영태 교관님, 인터넷 자료의 Stacey 기장님, 저의 이야기를 잘 들어 주고 긍정적인 이야기를 해 준 가족과 직장 동료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이 사회 여러 곳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의 위험을 피하고 싶으시면 비행기의 의자에 앉으세요 라는 말이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