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기)제가 사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곽동신
05-04-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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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내용은 이상민원장님의 권유에 따라 제가 우리회사 사보에 기고한 글입니다.(글을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원장님 리플내용좀 도용했습니다.) 사보에 기고하기전에 많이 망설였지만 막상 만인에게 오픈하고 나니 한편으로 마음이 가벼워지고 부담이 어느정도는 덜어지는 느낌입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제주도왕복 치료후에 폐쇄공간에 맞설 기회가 거의 없어서 치료효과가 반감되지 않았는지 걱정이군요. 그리고 같이 치료에 참여한 남희석씨가 웬지 그리워지는 군요. 연예인으로서가 아니라 전우로서 말입니다. 아래내용이 좀 길어서 지루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사보(책)는 4월20일 정신적 교주이신 원장님께 제출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P.S.:혹시 제가 보고 싶으신 분은 연락주세요.(017-340-6850)
★ 사보 기고 내용 ★
제목 : 다빈치코드의 주인공처럼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전혀 예기치 못한 상황에 직면하는 경우가 생애중 적어도 몇번은 있을 것 입니다. 저 또한 전혀 예상치 못했던 황당한 경험을 한것은 작년6월경 아침 이었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면서 여느 때처럼 을지3가역을 막 지날 때였습니다. 전동차안에서 갑자기 심장이 멎을듯 가슴이 답답하고 정신이 혼미해지고 금방이라도 죽을것 같은, 차라리 죽어야 순간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것 같은 죽음의 공포가 저를 엄습하기 시작했습니다. 공포가 최고조에 달할 즈음에 다음역에 정차했고 도망치듯이 지하 공간으로부터 탈출했습니다. 그 공포의 정도를 일상생활에서 겪을수 있는 상황과 굳이 비교한다면 고소공포증이 아주 심한 사람이 번지점프대 앞에 섰을 때 느끼는 심정과 비슷할 것입니다. 출근하자마자 제심장에 치명적인 심장질환이 있다고 확신하면서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여러가지 검사를 하고 난 후 내과의사는 전혀 예상밖의 진단 결과를 말했습니다. 검사결과 심장에는 전혀 이상이 없으며 폐쇄공포증일 가능성이 높으니 신경정신과로 가보라는 것입니다. 저는 “아니 그럼 나보고 정신병원으로 가라는 거야?” 라고 다소 불쾌한 마음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의사의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때부터 폐쇄공포증이라는 괴물은 저를 점점 더 옭아매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더이상 접근하기를 두려워하거나 폐쇄공포를 느끼는 공간이 점점 확장되어 갔고 지하철–회의실–버스-지하노래방–엘리베이터 등으로 리스트를 늘려 갔습니다. 폐쇄공간이라고 느끼는 곳은 무조건 회피하게 되는 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일주일간 정말로 살아도 사는게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사장님주재 회의에서 발표하기 직전에 악마가 저를 습격했을 때는 세상 모든 것이 끝난것 같은 무기력감과 패배감에 몸을 떨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식은 땀이 흐릅니다. 폐쇄공포를 해결하지 않고는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신경정신과에 찾아 가서 폐쇄공포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의사의 말에 따르면 폐쇄공포를 유발하는 원인은 정신분석학적으로 잠재의식 속에 있었던 폐쇄공간에 대한 공포감이 어느 순간 갑자기 발현된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어린 시절 폐쇄된 공간에 갇혀서 느꼈던 극심한 공포감이 잠재의식 속에 숨어 있다가 어른이 된 후에 어느 날 예고 없이 나타난다는 겁니다. 그런데 정신과의사를 통해 알게 된 폐쇄공포증에 대한 몇 가지 사실은 저에게 다소 위안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성인의 약 5% 정도가 폐쇄공포증으로 인해 비행기를 타지 못하고, 병원을 찾는 심장질환자의 21%가 신체적 장애가 아닌 폐쇄공포증 등의 불안장애라는 통계입니다.
드디어 저의 치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치료라는 것이 정말로 폐쇄공포증보다 더 황당했습니다. 병원에는 1평도 안되는 다락방 같은 절대폐쇄 공간이 있습니다. 의사는 그 공간이 바로 폐쇄공포증 치료실이며 치료방법은 그 공간에서 버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견딜 자신이 없었지만 치료비로 거금을 지불한 저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치료 첫날 의사가 밖에서 문을 잠그고 치료실에 저를 감금했을 때 정말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의사의 지시에 따라 복식호흡을 하면서 극도의 공포감에 맞서니까 신기하게도 공포감이 3~4분만에 내려갔습니다. 그전까지는 공포가 저를 공격하면 폐쇄공간을 반사적으로 회피해 왔는데 바로 그 것이 저의 증상을 더욱 악화시킨다는 사실을 몸과 마음으로 절실하게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공포로부터의 회피나 도피는 증상을 끝없이 악화시키고 반대로 공포에 맞서 폐쇄공간에서 버티면 괴물과의 싸움에서 이겨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치료 프로그램의 마지막 관문은 김포공항에서 제주도를 비행기를 한나절 만에 왕복하는 것입니다. 폐쇄공포를 가장 극도로 느낄 수 있는 환경은 비행기안 입니다. 일단 이륙하고 나면 비행기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절대 빠져 나올 수 없기 때문에 폐쇄공포증 환자에게는 최악의 공간인 것입니다. 김포공항에서 비행기가 이륙하기 직전에 또 다시 엄청난 공포가 저를 습격했습니다. 공포에 떨고 있던 저는 여기서 또 다시 폐쇄공간으로부터 도피한다면 저는 영원히 폐쇄공포라는 괴물의 포로가 된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공포와 맞서 싸웠습니다. 약 3~4분간의 죽음과도 같은 고통이 지나고 난후 거짓말같이 공포는 나에게서 멀어져 갔습니다.
"막연하고 이유도 없고 정당하지 않은 두려움이야말로, 후퇴를 전진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을 마비시킨다" 라는 루즈벨트의 말처럼 정당하지도 않고 전혀 논리적이지도 않은 두려움 때문에 신께서 저에게 부여한 자유로움, 회의실에서의 프리젠테이션, 비행기를 타는 즐거움과 같은 고귀함 들을 절대로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폐쇄공포증이 100% 완치되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어느 순간 또다시 저를 엄습할지도 모르는 공포에 이제는 당당히 맞설 것입니다. 그런 자세야 말로 인생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드는 진정한 용기일 것입니다. 또한 폐쇄공포증이 저에게 준 선물도 있습니다. 불안과 공포의 존재를 몰랐을 때보다 이를 극복했을 때 생각의 깊이와 삶에 대한 감사가 더 깊고 깊어졌습니다. 남을 탓하기 전에 저를 먼저 돌아볼 수 있는 여유와 관대함도 어느 정도는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다빈치코드의 주인공도 폐쇄공포증으로 힘들어 하는 사람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작가가 왜 이렇게 뛰어난 학자이자 문제의 해결자를, 소설을 이끌고 나가는 주인공을 폐쇄공포증 환자로 설정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작가는 아마도 이렇게 마음에 어려움이 있고, 스스로도 부족한 부분이 있었던 사람이 자신의 문제를 참고, 이겨내면서 더 큰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인간승리의 과정으로 묘사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다빈치코드의 주인공처럼 진정한 용기를 가진 인간승리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오늘도 파란만장하면서도 흥미진진한 제 자신의 인생소설을 써나가고자 합니다. 끝.